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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e

처음 민화를 접하고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고 (그 당시 모든 미대 중 서양화과의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민화쯤이야‘ 하고 약간은 오만한 자세로 수업을 들으러 갔었다. 그러나 민화를 배우면 배울수록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 자유로운 발상과 그에 적합한 현실을 초월한 자유로운 구도, 화려한 색감과 해학까지 민화의 멋스러움에 경탄하며 매우 겸손한 마음이 되어버렸다. 서양화에 비해 미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내 편견은 여지없이 깨지며 부끄러웠고 또 높은 예술적 경지를 이룬 조상님들의 DNA가 내게 흐르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들게되었다. 내가 참으로 사랑했던 세계적인 인상파 화가들, 색채의 마술사들인 모네 세잔 고흐의 그림들과 견주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나는 우리 그림 민화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민화의 아름다움과 함께 나를 또 놀라게 한 것은 민화의 작업 과정이었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그 준비과정에서부터 이렇게까지 정성스러울 수 있을까? 그 세심한 준비과정 중 하나는 다름아닌 바탕지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제조법으로 만든 종이 한지에 중탕하여 녹인 아교와 백반을 개어 정제수를 정확한 비율로 섞어 아교물을 만들어 포수를 해주고 건조시킨 후 천연재료로 염색을 해주어야 바탕지가 완성된다. 그 날의 온도와 습도도 감안하여야 하며 얼룩없이 칠하는 붓질 기술이 필요하고 줄에 널거나 바닥에 깔아 몇번을 건조시켜야 하므로 귀찮고도 오랜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쇠가 불속에서 연마하는 과정을 거쳐 강한 무기가 되듯이 얇고 하늘하늘하여 금방 찢어질 것 같은 한지가 아교포수와 염색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바림질로 겹겹이 올린 수백번의 붓터치를 오롯이 받아들이는 외유내강의 바탕지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한지의 특성을 보며 오랜 세월동안 다른 나라의 침략에도 굴하지않고 오뚜기같이 다시 일어서는 질긴 생명력을 가진 우리 민족과 꼭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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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민화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민화는 미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화가나 예술가들의 그림이 아니다. 조선시대 후반 일반 백성이 주체가 되어서 직접 그리고 향유했던 그림을 통틀어 민화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거창할 것 없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 곤충, 동물, 새, 바위, 나무들을 소재로 삼아 더욱 친근하다. 또한 그림의 소재에는 각각의 의미를 부여하여 행운과 복을 빌었다. 어변성룡도를 그리며 자녀의 입신양명과 출세를, 부귀영화를 소망하며 모란도를, 부모님의 장수를 바라며 복숭아와 나비를, 가정의 화목과 행복을 꿈꾸며 화조도를 그렸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며 그린 그림, 무형의 꿈과 소망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아름다운 예술행위의 유산이 바로 민화인 것이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의 내가 떠오른다.

미국은 참으로 넓고 거침없는 나라였다. 때로는 그 광활함이 척박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인디언들의 피를 뒤로 하고 세워진 나라 미국, 이방인들이 세운 나라 미국에서 나또한 이방인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한참을 낯설고 두려웠다. 어른인데도 의사소통은 커녕 신호등 체계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향수병을 앓던 시기에 우리 그림 민화는 나에게 다정한 친구였다. 민화를 그리며 한겹씩 쌓여가는 고운 색속에 묻어놓은 그리움 하나, 외로움 둘.. 그렇게 켜켜이 쌓아올린 내 쓸쓸함은 나비도 되고 용도 되고 꽃도 되어 어느새 멀리 날아갔고 내 주변에는 민화를 함께하는 친구들이 찾아왔다. 민화로 맺게 된 소중한 인연들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좋은 소식을 물고 오는 제비를 그릴 그 무렵, 우연하게도 민화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찾아왔다. 세상에!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민화로 인해 소망하는 하나를 이루며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요즈음 무척 기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끝으로 복과 꿈을 그림으로 그리며 어려운 시기를 견딘 옛 선인들처럼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꿈을 잊지않고 끊임없이 꿈을 쫒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 이루어지든 아니든 그러한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가치있다. 지치지않고 어려움 속에서도 아름다운 꿈을 꾸는 이에게는 어느새 그 꿈이 현실로 다가와 나에게 민화가 그러했듯 반가운 친구가 되어 행복의 중심으로 함께 걸어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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